『철사코끼리』

yellow garden 2025. 9. 8. 17:04

슬픔을 나누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단순한 연극을 넘어 사회와 철학이 교차하는 장이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무대에 오른 비극은 인간 존재의 고통을 성찰하고, 그 슬픔을 함께 견디는 법을 묻는 자리였다. 그 속의 카타르시스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통해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느끼는 공감과 연대의 기쁨이었다. 기쁨은 쉽게 전염되지만 슬픔은 그렇지 않다. 섬세히 묻고 가까이 다가가도 쉽게 닿지 않는 감정이 슬픔이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글자처럼 서로에게 기대고 슬픔을 나눌 수 있을 때, 인간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런 생각을 깊게 해 주는 책이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 철사 코끼리이다. 주인공 데헷은 분신 같은 코끼리 얌얌을 잃은 뒤, 그 슬픔을 받아들이기 위해 철사로 어설프게 만든 코끼리를 끌고 다닌다. 손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지나가는 길마다 철사가 땅에 긁히는 소리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피해 멀어진다. 철사 코끼리는 얌얌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한동안 그렇게 자기 고통을 마주하며 헤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데헷은 깨닫는다. “나의 슬픔이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고 있구나.” 그리고 큰 결심을 내린다. 삼촌의 대장간 용광로에 철사 코끼리를 넣어 녹여버린 것이다. 삼촌은 그것으로 종을 만들어 주었고, 소년은 그 종소리를 들으며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여전히 얌얌이 보고 싶을 때에는 손의 상처 대신 종의 울림을 통해 그리움을 표현한다. 종소리 속에서 고통은 새로운 형태로 남아 삶의 일부가 된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메시지는, 슬픔을 억누르거나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슬퍼한 끝에 스스로의 방식으로 삶을 다시 이어가는 과정이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을 예술적·상징적 방식으로 변환해 결국 살아가는 힘으로 바꿔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이다.

 

작가 고정순은 등단 이후 꾸준히 삶의 고됨을 지켜주고 응원하는작업을 해왔다. 택배 일을 하는 아빠, 일하는 엄마, 위험을 무릅쓰는 소방관과 흔들리는 이웃에게 당신의 수고를 잊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그림과 글로 전해왔다. 철사 코끼리또한 죽음과 상실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희망을 건넨다. 작가는 북토크 자리에서 죽음과 상실 그림책이 아이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충분히 슬퍼하지 못할 때, 누군가 대신 아파해주는 것이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기쁨을 나누는 일은 배우지 않아도 사는 데 무리가 없지만, 슬픔을 나누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사람의 일이다.” 은유 작가의 이 말처럼, 슬픔을 나누는 법은 삶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상실을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그때 혼자 고통을 안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애도하며, 다른 이들과 슬픔을 나누고, 종소리처럼 새로운 울림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슬픔은 나눌 때 비로소 가벼워진다. 철사 코끼리는 그 사실을 담담하고도 깊이 있게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나누어야 하는지,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어디에서 얻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결국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슬픔을 나누는 방법을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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